제 일은 남의 시작을 검토하는 겁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을 합니다. 초기 팀을 만나고 기술을 들여다보고 이게 우리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지 판단하는 자리예요. 혁신 기술에 관심이 많아서 고른 일이고 지금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하루 종일 남의 ‘시작’을 들여다보다 보면, 정작 제 시작은 계속 뒤로 밀립니다.
제가 오래 품어온 호기심은 좀 엉뚱한 쪽에 있습니다. 저와 성향이 정반대인 사람들 — 예술을 하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요. 제가 숫자와 검토서로 세상을 보는 동안, 그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문법으로 같은 세상을 봅니다. 그게 궁금해서 저는 다름에 일부러 노출되는 쪽을 택해 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만나지지 않으니까 의도적으로, 때로는 강제적으로요.
그러다 종종 상상을 합니다. 언젠가 이런 걸 해보고 싶다, 하는 것들이요. 그 상상 속에는 늘 사람이 같이 있었습니다. 혼자 하는 그림이 아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그 사람들과 시간과 생각을 나누는 그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게 늘 ‘언젠가’라는 겁니다. 언젠가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꿔봤어요. 언젠가를 오늘로 옮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목록으로 적고 위에서부터 하나씩 합니다.
목록의 첫 번째 줄은 이거였습니다. 내가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보와 생각을 다시 나누기.
제일 좋은 건 얼굴 보고 만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몇 번 날짜를 잡아보면 알게 돼요. 대면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가장 자주 실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걸.
그럼 SNS는 어떨까요. 이미 다들 인스타를 하고 저도 봅니다. 그런데 거기서 오가는 게 제가 원하는 대화는 아니더라고요. 대부분 일방향이고 조금 피상적입니다. 무엇보다 사업하는 친구들의 계정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 전부 상업적인 시선으로 정리돼 있어요. 안부가 아니라 홍보가 되는 겁니다. 그걸 탓하는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닫힌 커뮤니티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만 닿는 곳으로요. 형식은 일단 일방향으로 갑니다. 뉴스레터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양방향인데 시작은 일방향이니까요. 이유는 단순해요. 양방향을 먼저 요구하면 아무도 안 옵니다. 단톡방을 파면 며칠 반짝하고 조용해지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일방적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답장은 그다음 문제로 두고요.
첫 번째 목표는 구독자 수가 아니라 답장 한 통입니다.
지인들에게 이 뉴스레터를 보내고 “잘 지내?” 하는 안부 답신을 받는 것. 그게 이번 시도의 성공 기준입니다. 몇 명이 열어봤는지보다 답장이 몇 통 왔는지를 셀 생각이에요.
뉴스레터를 어떻게 만들지는 — 아직 안 정했습니다. 어떤 도구를 쓸지, 얼마가 들지, 무슨 내용을 담을지 전부 그다음입니다. 순서를 이렇게 잡은 게 맞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다만 이번엔 계획을 다 세우고 시작하는 대신 일단 만들어보고 거기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남의 사업계획서는 그렇게 검토하지 않지만 제 첫 걸음은 이렇게 떼보려고요.
목록의 첫 줄은 아직 지우지 못했습니다. 다음 호에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답장이 몇 통 왔는지 적겠습니다. 한 통도 안 왔으면 그것도 그대로 적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