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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야기 · 며칠을 몇 초로

법을 검색하는 사이트를,
AI 없이 만들었습니다

인증 요건 하나 찾으려고 담당자가 PDF 수십 개를 손으로 뒤지던 일입니다. 그걸 공개 자료와 무료 서버만으로 몇 초로 줄였습니다. 최신 AI를 얹지 않았더니 오히려 더 싸고 정확했어요.

글 · Ray2026.09읽기 5분

연구소에서 잘 만든 제품도 그것만으로는 밖에 팔 수 없습니다.

나라마다 “이건 안전하다”는 인증을 받아야 비로소 상품이 됩니다. 그런데 이 인증이 만만치 않아요. 정부 산하기관과 계속 요건을 주고받아야 하고 안 맞으면 제품을 다시 뜯어고쳐야 하고, 그러다 개발비가 눈덩이처럼 붑니다. 문제는 연구소 사람들이 설계와 제작에 집중하다 보니 이 절차를 자꾸 뒤로 미룬다는 거예요. 인증은 개발 끝나고 처리하는 잡무가 아니라 시작할 때부터 알고 설계에 반영해야 하는 조건인데도요.

인증 요건은 결국 법에서 나옵니다. 법은 층층이 쌓인 구조예요. 맨 위에 큰 원칙을 정하는 법률이 있고(“고압가스는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 아래 시행령·시행규칙이 법이 넘긴 세부를 정합니다. 실무에서 바로 쓰는 아주 상세한 기준은 고시·기술기준이고요. 우리 분야에선 한국가스안전공사가 만드는 KGS Code가 여기 해당해요. 우리 연구소는 고압가스를 다루니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이 기본이고 실무 지침이 KGS Code입니다.

그런데 이걸 찾는 게 진짜 고역이었어요. 우리 제품과 관련된 단어가 법 어디에 나오는지, PDF로만 있는 인증 지침 수십 개 중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를 담당자가 일일이 손으로 뒤졌습니다. “이걸 좀 편하게 찾을 수 없나?” 그래서 이 부분만 쏙 뽑아 검색되는 사이트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규칙은 딱 두 개였습니다. 공개된 자료만 쓸 것(법령·고시·KGS Code는 다 공개돼 있어 회사 기밀이 샐 일이 없어요), AI는 안 쓸 것(비용을 최대한 줄이려고요).

만든 방법 · 세 단계
1. 모으기
공개된 법·시행령·시행규칙 원문과, 코드별 PDF로만 있던 KGS Code·별표를 받아 글자를 뽑아 정리
2. 쪼개기
조·항·호 단위로 잘게 나누고 “어느 법 몇 조에서 왔는지” 출처 꼬리표를 부착
3. 검색
AI 없이 키워드 검색 · 띄어쓰면 AND, OR, 큰따옴표는 문구 그대로

정부 법령정보 API를 실시간으로 그대로 부르지 않고 원문을 한 번 받아 우리 쪽에 정리해뒀습니다. 이유가 있어요. 정부 법령정보 사이트가 트래픽 과부하로 접속이 자주 불안정했고 KGS Code는 애초에 API에도 없는 코드별 PDF라 어차피 따로 받아야 했거든요. 남의 불안정한 서비스에 검색을 실시간으로 매달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원문을 스냅샷처럼 확보해두고 우리 사이트에서 안정적으로 빠르게 검색되게 했어요.

여기서 AI를 안 쓴 게 핵심이었어요. 법 검색에 필요한 건 그럴듯한 요약이 아닙니다. 정확히 그 단어가 든 조문을 찾아주는 게 중요해요. “고압가스”를 치면 그 단어가 들어간 조항이 그대로 나와야지, AI가 알아서 풀어 설명하는 건 오히려 방해예요. 진짜 쓸모 있는 건 단순 검색이 아니라 비교였습니다. 담당자가 원래 여러 PDF를 나란히 펴놓고 하던 대조 작업을 화면으로 옮겼어요. KGS Code를 목차 기준으로 줄 세워 같은 항목이 코드마다 어떻게 다른지 한 줄로 맞춰 보여줍니다. “저장” 같은 키워드 하나를 넣으면 법·시행규칙·여러 KGS Code의 해당 대목을 차트로 나란히 비교해주고요. PDF를 하나씩 열어 대조하던 걸 한 화면에서 봐요.

검색 품질은 AI가 아니라 자료를 잘 정리해서 확보했습니다.

이 사이트는 사실상 돈이 안 듭니다. 서버는 Vercel 무료 요금제(사내에서 쓰는 규모라 충분해요), 데이터는 공개된 법령 원문과 KGS Code(유료 법령 DB를 살 필요가 없어요), AI 비용은 0원(애초에 안 쓰니까요). 공개 자료와 무료 서버, 잘 만든 검색. 이 세 개만으로 사람이 며칠 걸리던 일을 몇 초로 줄였습니다. 오히려 AI를 안 넣었기 때문에 싸고 정확했어요. 편하게 만들겠다고 꼭 최신 AI를 얹을 필요는 없더라고요. 도구를 고르기 전에 문제의 종류부터 정하는 것. 이번 문제를 ‘그럴듯한 요약’이 아니라 ‘정확히 그 단어가 든 조문 찾기’로 정하고 나니 답은 AI가 아니라 검색이었고, 이 순서는 앞으로도 지키려 합니다.

직접 해보세요

고압가스 법령·KGS Code 검색

글로만 읽지 말고 직접 만져보세요. 공개된 고압가스 안전관리법과 KGS Code를 그대로 검색해볼 수 있게 열어뒀습니다. 저장처럼 단어 하나를 넣어보고 여러 코드를 나란히 비교하는 화면까지 눌러보시면 “PDF를 손으로 뒤지던 일”이 어떻게 몇 초가 됐는지 바로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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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
글쓴이 · Ray

양산화 개발 조직의 연구원. 소수의 사람이 요구사항의 홍수를 견디는 자리에서, AI를 검색 도구가 아니라 손발로 세워보는 중입니다. 잘된 것보다 안 된 것을, 결론보다 과정을 적습니다.